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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해사는
지금으로부터 약 일천 일백 여년 전 신라의 헌강대왕이 창건한 사찰이다.
삼국유사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
망해사를 창건하게 된 연기는 다음과 같다.


영축산 망해사 창건연기

신라 제 49대 헌강대왕 때는 서울(경주)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풍악과 노래소리는 길거리에 가득하였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와 나라는 퍽 태평하였다.

때에 대왕은 오늘날의 울산 세죽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.

이는 동해용왕의 소행이라 하는 일관의 조언에 따라, 왕은 그의 측근들에게 명령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게 하니 그 명령과 함께 구름과 안개가 걷히어 졌으므로, 이 땅의 이름을 개운포라 하였다.
[벽화1]

왕은 서울에 돌아오자 이 영축산 경승지를 선정하여 용을 위해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망해사라고 하였다 한다.
그런데 그 때에 절을 세우라는 왕명이 있자 그것을 기뻐한 동해 용왕은 그의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했고,
그 중 한 아들은 왕을 따라 서울에 들어와서 정사를 도왔는데 그 이름을 처용이라 하여, 처용이 나온 바위를 처용암이라 하였다.
지금도 개운포 해중에는 이 바위가 남아있다. [벽화2]
    [벽화3]        [벽화4]

이러한 연기가 있는 고찰이었는데 언제 어떻게 하여 폐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(임진왜란으로 추정), 옛 터만 전해오던 것을 1957년에 전 주지이신 김영암 화상이 중건하고, 황무의 터에 버려졌던 유적등도 찾아내고 정리하여 망해사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틀을 잡았다.
 

현재 망해사에는 보물 제 173 호로 지정된 2기의 부도가 있으며, 이 밖에도 1960년 이후 발견 된 각종 기와, 그릇조각등도 보관되어 있다.
망해사에서 출토된 기왓장 가운데에는 '가정(嘉靖) 23년갑진'(조선 중종 39년,1544년) 이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도 발견되어서 이 때에 중건 불사가 이루어 졌었음을 추측케 한다.
이 기와 조각에 새겨진 내용은 망해사의 창건 후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.

 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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